리센느와 중소돌의 기적: 자컨이 음악을 끌어올린 방식
2년 묵은 곡이 멜론 톱3까지 올랐다. 리센느의 역주행은 자체 콘텐츠에서 시작했고, 그 뒤에는 솔파스튜디오가 있다.
거제 앞바다에서 한 멤버가 "거제 야호"를 외친다. 일본에서 온 미나미가 리더 원이의 고향에 놀러 가 던진 사투리 한마디였다. 원이의 개인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에 올라온 이 영상은 3주 만에 조회수 700만을 넘겼다. 그 화제가 어디로 흘렀느냐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2024년 8월 나왔다 조용히 묻혔던 리센느의 'LOVE ATTACK'이 2년 가까이 지난 2026년 7월 멜론 톱100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실시간 차트에서는 데뷔 828일 만에, 그러니까 2년 3개월이 지나 처음으로 1위를 찍었다. 역주행이다.

순서가 거꾸로였다
보통은 곡이 먼저다. 신곡을 내고 음악방송을 돌고 화제가 쌓이면 팬이 붙는다. 리센느는 그 순서를 뒤집었다. 곡은 이미 2년 전에 나와 있었고, 다시 불을 붙인 건 새 앨범도 대형 마케팅도 아니었다. 원이가 개인 채널에서 선보인 갸루 분장과 걸쭉한 사투리, 미나미의 어설픈 한국어 리액션 같은 자잘한 장면들이었다. 이 장면들이 에스엔에스에서 밈처럼 돌았고, 사람들이 "얘네 누구야" 하며 곡을 찾아 들었다. 콘텐츠가 관심을 만들고, 그 관심이 묵은 곡을 끌어올렸다. 발매 2년이 지난 신인의 곡이 멜론 톱3까지 오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신곡 프로모션에 큰돈을 쏟아부어도 밟기 어려운 순위를, 2년 전 곡이 자컨의 힘 하나로 밟았다.
업계 용어로 자컨, 자체 콘텐츠다. 소속사가 직접 찍어 올리는 브이로그와 웹예능, 챌린지, 라이브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앨범 활동을 받쳐 주는 곁가지 정도였다. 리센느에서는 이 곁가지가 본체를 살렸다. 중소기획사에게 자컨이 왜 결정적 무기가 됐는지, 여기서부터 풀어 볼 만하다.
돈으로 못 사는 걸 판다
중소기획사는 대형사와 마케팅비로 붙어서는 이길 수 없다. 방송과 광고, 옥외를 도배할 자본이 없다. 그런데 자컨의 경쟁력은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멤버가 어떤 사람인지, 카메라가 꺼진 것 같은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웃는지, 그 결에서 나온다. 이건 돈을 쏟는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팬이 아이돌과 맺는 관계도 달라졌다. 무대 위 완성된 모습만 보던 시절을 지나, 지금 팬은 멤버의 성격과 관계, 일상의 리듬에 붙는다. 좋아하는 마음의 출발점이 바뀐 셈이다. 잘 부르고 잘 추는 것으로 시작해 사람에 정드는 순서에서, 사람에 먼저 정들고 그다음 곡을 찾아 듣는 순서로 옮겨 간다. 자컨은 이 새 순서에 정확히 들어맞는 형식이다. 짧고 자주 올라오며, 무대에서는 안 보이던 결을 보여 준다. 원이의 사투리는 기획 회의에서 짜낸 설정이 없다.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고, 팬이 반응한 것도 그 진짜에 가까운 결이었다. 대형사가 규모로 밀던 자리를 중소돌이 이런 밀도로 파고든다.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 한 편보다, 멤버가 살아 있는 자컨 열 편이 팬을 더 오래 붙든다.
리센느 뒤의 솔파스튜디오
리센느의 자컨을 그냥 소속사가 대충 찍은 것으로 보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이 콘텐츠를 설계한 건 솔파스튜디오라는 외부 제작사다. 2020년 윤성원 대표가 세웠고, 그는 그전에 유튜브 채널 오디지(ODG)와 솔파를 키운 사람이다. 아이를 앉혀 놓고 낯선 어른과 대화를 시키던 그 포맷, 수백만 구독자를 모은 그 감각이 아이돌 자컨으로 넘어왔다. 원이의 채널 이름부터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다. 매끈한 브랜딩과는 거리가 먼, 사람 그 자체를 앞세운 작명이다. 잘 만든 티를 지우고 사람이 새어 나오게 두는 것, 그게 이 스튜디오가 파는 감각이다.
솔파스튜디오가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은 질문부터 다르다. "이 멤버한테 뭘 시킬까"를 묻는 대신 "이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를 먼저 판다. 그래서 원이에게는 사투리와 갸루를, 미나미에게는 서툰 한국어와 거제 여행을 붙였다. 억지로 웃긴 상황을 짜 넣기보다, 멤버 안에 이미 있는 캐릭터를 찾아 카메라 앞으로 끌어냈다. 이 방식은 복제가 어렵다. 예산으로 따라 할 수 없고, 사람을 보는 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소기획사가 이런 안목을 사내에 다 갖추기는 어렵다. 곡을 만들고 무대를 올리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사람을 끌어내는 것은 다른 근육이다. 그래서 솔파스튜디오 같은 전문 제작사가 새로운 층으로 떠오른다. 음악은 소속사가, 캐릭터를 발굴하는 자컨은 전문 스튜디오가 맡는 분업이다. 대형사가 인하우스로 다 끌어안던 걸, 중소는 밖에서 빌려 대등해진다. 자컨을 대신 만들어 주는 회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으면, 다음 리센느는 더 자주 나온다.
무엇이 이걸 가능하게 했나
기술이 판을 깔았다. 자컨을 찍고 편집하고 자막을 다는 비용이 몇 년 전과 비교가 안 되게 내려갔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은 팬과 직접 만나는 통로를 공짜로 열어 놓았다. 덕분에 작은 팀도 큰 팀만큼 자주, 많이 콘텐츠를 낸다. 잘 만든 소수의 결과물로 승부하던 문법이 헐거워지고, 자주 올리는 날것의 밀도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알고리즘도 자컨 편이다. 틱톡과 쇼츠는 제작비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멈춰 서서 다시 보고 따라 만들면 그 신호를 읽어 더 멀리 퍼뜨린다. "거제 야호" 700만 뷰가 그 증거다. 무명에 가깝던 신인의 15초가 마케팅비 없이 수백만 화면에 떴다. 콘텐츠가 뾰족하면 자본의 크기와 상관없이 도달이 열린다.
혼자만의 사건은 아니다
리센느가 처음은 아니다. 국내 활동이 거의 없던 시기에 해외에서 곡이 먼저 터진 피프티피프티, 자컨과 라이브로 팬층을 다진 키오프가 앞서 비슷한 길을 냈다.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규모로 밀지 않고 뾰족한 콘텐츠 한 조각으로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자본이 얇은 팀이 콘텐츠의 밀도로 판을 뒤집는 사례가 이렇게 쌓이고 있다.
정책도 뒤를 민다. 2026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중소기획사 열 팀을 뽑아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밝혔고, 리센느도 명단에 올라 팀당 연 최대 3억 원을 받는다. 다만 이 돈이 기적을 만들지는 못한다. 화제는 여전히 콘텐츠에서 시작한다. 지원금은 이미 불이 붙은 팀이 그 불을 현지 무대와 유통으로 키우는 단계에서 값을 한다. 꺼진 불씨를 대신 지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패는 어떤 팀을 고르느냐, 그 팀이 화제를 매출로 바꿀 체력을 갖췄느냐에 달렸다.
진짜 과제는 그다음이다
그렇다고 자컨이 만능은 아니다. 캐릭터는 찾아지는 것이지 공장에서 찍어 내는 물건이 아니다. 원이의 사투리가 통했다고 다른 팀이 사투리를 붙이면 그건 이미 설정이고, 팬은 억지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자컨을 늘리라는 압박이 커질수록 진정성이 얇아지는 역설도 뒤따른다.
더 큰 숙제는 화제를 관계로 굳히는 일이다. 700만 뷰는 유튜브 서버에 남지만, 앨범을 사고 콘서트에 오는 기록은 팀에 남는다. 관심을 소유로 옮기지 못하면 다음 알고리즘 변덕에 쓸려 간다. 조회수가 초동 판매와 투어 좌석으로 이어지느냐가 반짝과 지속을 가른다. 이 지점에서 위버스나 버블 같은 팬 플랫폼, 이메일과 멤버십처럼 팀이 직접 쥐는 접점이 힘을 낸다. 자컨으로 데려온 관심을 이런 통로로 안에 들여야 다음 앨범의 초동으로 바뀐다. 리센느가 8월 케이콘 엘에이 무대에 서는 일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온라인에서 얻은 관심을 실제 무대와 현지 팬덤으로 옮기는 시험대다.
그래서
리센느의 기적을 운으로만 보면 절반만 읽는 셈이다. 음악을 먼저 밀고 콘텐츠로 받치던 공식이 뒤집혔고, 멤버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자컨이 곡을 끌어올렸다. 그 중심에 사람을 보는 눈을 판 솔파스튜디오가 있다. 중소기획사에게 이건 드문 기회다. 자본이 없어도 안목과 캐릭터가 있으면 대형사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
다만 출발선이 같아졌을 뿐, 결승선까지 평평해진 건 아니다. 한 번의 화제를 몇 년의 팬덤으로 늘려 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돈이 든다. 자컨으로 문을 연 팀이 그다음을 준비했느냐가 진짜 기적과 한철 행운을 가른다. 관심이 식기 전에 팬을 안으로 들이고 다음 한 방을 쟁여 둔 팀만 남는다. 리센느의 3위가 반짝으로 끝날지, 자컨이 만든 관심이 오래가는 이름으로 굳을지는 이제부터 지켜봐야 한다.